1954-1956

창립기- (5) 1954-1956년

정전협정이 맺어지고 정부가 서울로 환도하여 사회가 안정을 되찾아 가며 전후 복구가 시작되면서 생리학자들의 활동도 약간 활발해졌지만 전쟁 전의 연구 성과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1954-56년의 제6회-제8회 대한의학협회 학술대회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제6회 의학협회 학술대회는 1954년 6월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서울의대에서 개최되었는데, 생리학 관련 논문은 아래의 단 두 편뿐이었다.

제6회 대한의학협회 학술대회
1954년 6월 20일(일) 오전 9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1. Donaggio 反應成績에 對한 檢討 서울醫大 生理 / 申東薰
2. 有核楕圓赤血球의 Hemolysis와 Fragility에 關하여 慶北醫大 / 申鉉鑽
1955년에는 사정이 조금 나아져 제7회 의학협회 학술대회에서는 다섯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으며, 특기할 것은 전남의대(길원식)가 논문 발표를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이 해 4월에는 부산의대 생리학교실이 개설되어 교실 단위로는 일곱번째의 식구가 되었다.

제7회 대한의학협회 학술대회
1955년 6월 11일(토) 오전 8시 30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1. 除副腎皮質 마우스의 迷路學習 서울醫大 生理 / 鄭良殷
2. 健常人의 八音八臟彈動圖 및 心臟電氣圖 間의 時間的 關係 서울醫大 生理 / 高日燮
3. 尿分泌 及 腎臟循環에 對한 末梢神經의 影響 全南醫大 生理 / 吉洹植
4. 身體運動 時의 尿中 17 Ketosteroids 量 서울醫大 生理 / 申東薰
5. 血中 好酸白血球 減少로 본 精神的 非常刺戟 서울醫大 生理 / 南基鏞·申東薰·李相敦·金文柱·鄭良殷·高日燮

1956년에도 사정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던 것은 아래와 같이 제8회 의학협회 학술대회에 발표된 생리학 논문이 4편에 불과했던 사실에서 알아 볼 수 있다. 이 해의 특기 사항으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서울여의대가 7년만에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한 점과 공군의 항공의학연구소가 역시 두 편의 논문으로 생리학계에 모습을 드러낸 점이다. 한국전쟁 중과 전후 복구기에 군진의학이 우리나라 의학에 기여한 점이 적지 않았는데 생리학에서도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해의 일지를 들쳐 보면서 빠뜨릴 수 없으며, 또한 경하할 일은 성신대학 의학부(현재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생리학교실이 창설된 것이다. 이로써 대한생리학회의 회원교가 여덟이 되었다.

제8회 대한의학협회 학술대회
1956년 5월 26일(토) 오전 9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제2강당
1. 正常 血液凝固時間의 動搖에 對하여 女醫大 生理 / 徐明淑
2. Kymogroph 描記式 凝固計에 對하여 女醫大 生理 / 李鍾晩
3. 差腎摘出 白鼠의 Eosinophil level에 對한 Stress負荷 白鼠 尿의 影響 航空醫學硏究所 / 鄭聖璋·李泰俊
1956년 5월 27일(일) 오전 10시 30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대강당
4. 心音 再生 及 擴大(豫報) 航空醫學硏究所 / 崔炫